예전부터 그런 말이 있었다. "21세기는 정보 홍수의 시대다. 더 이상 정보는 부족하지 않다. 오히려 너무 과도한 정보량에 사람들이 허덕이고 있으며 그 경향성은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다" 이 표현에 대해서 솔직히 공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아니다. 정보 홍수를 넘어서 정보 재앙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너무 정보가 유통되고 있으며 그 유통된 정보조차 물갈이 되는 속도가 소름 끼치게 빠르다. 고통스럽다. 어떤 정보를 선택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전부 다 유용한 정보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 시간은 한정돼 있으며, 내 집중력 또한 한정돼 있다. 그래서 요즘은 두렵다. 내 주의를 끌어들이는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이.
유튜브가 좋은 예다. 나는 어떤 정보를 탐색하기 위해 유튜브에 접속했으나 유튜브에 들어가자마자 내 성향에 맞게끔 추천되는 영상들, 자극적인 썸네일에 이끌려 어떤 영상을 클릭하면, 또다시 옆에 추천되는 영상을 클릭하고, 이 과정을 반복하면 1시간이 순식간에 삭제된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면 내가 처음에 어떤 목적 때문에 유튜브에 방문했는지조차 까먹게 된다. 내가 문제인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이런 경험이 없는가. 아마 아닐 것이다.
이 책은 주야장천 자기가 겪은 문제만 제시하고 마지막에 억지 해피엔딩을 제시하는 자기 계발서가 아니다. 저자의 경험으로 출발한 집중력 문제에 대해 저자의 가설을 검증하는 현장 답사기다. 희망찬 미래를 주창하지도 않는다. 단지 현상만 분석할 뿐이다. 그 점이 정말 좋았다. 내가 원하는 건 사실이지 희망찬 미래가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의 집중력은 안전한가. 나는 아니다. 아니, 매우 위태로운 상태다. 코로나 이후에는 그 문제가 더 심해졌다. 인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피곤했다. 예전에 건축가 유현준 씨가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부유한 사람일수록 오프라인 세계에 머무는 시간이 많으며, 가난한 사람일수록 온라인 세계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 동의하는 바다. 그리고 나는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현재 지니고 있지 못하고 있기에, 내 주 활동 무대는 온라인이다. 지금도 이렇게 온라인상에 내 시간을 사용하여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나는 가난한 사람이다. 온라인이 내 활동 반경을 넓혀준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대가로 너무 많은 내 주의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책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 "집중력 파괴는 그들의 사업 모델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그들은 거대 테크기업이다. 한 번만 생각해 보자. 지금 내가 내 글을 쓰고 있는 이 공간은 누가 제공하는 걸까? 네이버라는 테크 기업이다. 그리고 나는 왜 이 공간을 사용하는 대가를 네이버 측에 지불하지 않는 거지? 언젠가부터 나는 내게 제공되는 온라인상의 공간에 대해 당연스럽게 생각했다. 하지만 개발자로 일했던 내 경험을 살려보면 이렇게 블로그를 개발하고 운영하는 것 쉬운 일이 아니다. 개발 시 투입되는 많은 인력과 더불어 운영 시에 필요한 운영 노하우와 서버비 등 모든 게 다 돈이다. 그런데도 네이버는 고맙게도 내게 이 공간을 무료로 대여해 줬다. 도대체 왜?
답은 간단하다. 이 평수 제한 없는 공간 사용 대가로 내가 그들에게 내 시간을 대가로서 지불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 공간 사용의 대가는 결코 무료가 아니며, 그 대가는 어떻게 보면 가장 값비싼 자원인 시간이다. 시간을 점유한다는 건 곧 그 사람의 주의 집중을 빼앗는다는 것이다.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링크드인, 네이버, 카카오 등 전부 사람들에게 유용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가로 그들의 주의 집중을 점유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들의 주의력을 조금이라도 오래 위탁받는 게 목적이며, 이는 필연적으로 우리의 집중력이 파괴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왜 그러냐고?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너무 자극적이며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한 유튜브도 그렇고 인스타그램도 그렇고 기타 대규모 플랫폼들은 뇌과학자까지 징병해서 어떻게 하면 우리의 주의 집중을 빼앗을까 고민하고 있다. 하루 종일 그 고민만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주의 집중이 곧 그들의 연료, 즉 돈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의지가 뛰어나니 스스로의 주의력을 자율적으로 통제 가능하다고? 축하한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함을 알아달라. 그럴 수밖에 없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스크린 너머에는 나의 주의 집중을 빼앗으려는 이 세계 최고의 전문가 1,000명이 대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올스타 축구팀과 현재 경기를 치르고 있다. 그리고 현재까지 그 결과는 패배율 100%다.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끝이 정해진 게임이면 좋겠다만, 안타깝게도 이 싸움은 내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거 같다. 그래서 고통스럽다.
정보로부터 단절되고 싶다. 그리고 느린 삶을 살고 싶다. 하지만 다양하게 내게 접근해오는 정보를 습득하지 못하면 뒤처지는 것 같고, 해당 정보가 또 들어보면 유용하다는 생각도 늘어서 쉽사리 끊을 수가 없다. 더군다나 나는 나를 알려줄 훌륭한 멘토도 없지 않은가. 판단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지 자원을 이제부터라도 지키려 한다. 두렵지만 선택을 해야 할 때다.
예전부터 우리 사회에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의 원인을 개인이 아닌 사회 탓으로 돌리는 이들을 패배자 내지는 핑계를 찾는 사람으로서 한심하게 보는 시선이 존재했다. 지금도 다르지 않으리라. 사회 탓으로 돌려봐야 해결되는 것도 없기 때문에 개인의 책임으로 현재 문제의 원인을 진단해야 해결 방안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 말은 나 역시 상당 부분 동의한다. 개인 측면에서 분명히 현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할 수 있는 게 있다. 주의 집중과 관련해서는 나는 여러 선택지를 도입하려고 하며 실제로 시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휴대폰 사용을 제한하기 위해서 잠금 앱을 예약 시간대를 설정해 휴대폰 사용을 억제하고 있으며, 컴퓨터 역시 비슷한 방식의 제한을 걸어놓았다. 하지만 말이다. 개인의 의지가 아무리 강력해도, 그리고 환경 구축을 그렇게 해놓는다고 하더라도 그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 세계 시스템이 그렇게 굴러가니 말이다. 대부분의 산업이 사람들의 주의 집중을 빼앗는 것을 연료로 삼고 있는 현 상태에서 나만 외딴곳에서 혼자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도 생계유지를 위해 간접적으로 사람들의 주의 집중을 점유를 연료로 하는 사업체에서 일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으니 말이다. 다이어트를 개인 차원에서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식품 자체가 가공식과 같은 정크푸드가 압도적으로 생산되는 현 세계에서 다이어트를 한다는 것은 개인의 노력으로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래, 물론 가능한 사람도 있겠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 책의 저자는 주장한다. 그리고 어떻게라도 우리는 노출될 수밖에 없다. 모든 게 연결된 세상이니 말이다.
그러니 사회 전반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우리의 도둑맞은 집중력을 찾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주의 집중을 연료로 하는 사업 모델에서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사업 모델로. 그게 뭐냐고? 나도 모르고 저자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이 좋다. 억지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아서 말이다. 하지만 찾아야 한다. 이 상태가 지속되다가는 우리 모두 ADHD 환자가 될 거 같다. 그리고 이미 나는 된 듯하다. 나는 현재 아노미 상태다. 고통스럽다. 그리고 벗어나고 싶다. 해결책은 역시 정치 권력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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