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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서평: 실존의 덫"

이태원프리덤@ 2023. 2. 4. 15:36

실존의 덫

책을 읽으며 나의 얕은 지식으로 설명은 되지 않지만, 놓을 수도 없었던 한가지 감상이자 발상은 코기토 명제로의 회귀였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를 생각하며 네 명의 중심인물들이 과연 책의 제목대로 존재하고 있는지, 그리고 실존주의 철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상상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책에서 밀란 쿤데라가 계속해서 언급하고 인용한 데카르트와 니체 등의 철학자를 공부하며 생각해본 실존에 대해 부족한 의견을 나누어보고자 한다. 이 책은 니체가 말한 삶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한다. 인문학의 연못에 발을 담아보고자 고전을 찾은 수많은 독자들로 하여금 첫 단락에서 나가떨어져 어려운 책으로 속단 내리게 한 악명높은 책이기도 하다. 니체와 데카르트의 철학과 명제들이 가득한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과연 등장인물을 벗어나 실존주의적 삶에 충실하였을지 궁금했다. 또한 나는 책 속 네 명의 인물들은 과연 존재하는가, 그리고 실존주의적 삶에 이르렀는가에 대해 알고 싶었다.

 

토마시테레자’, 그리고 프란츠사비나’. 책 속에는 그들의 모든 지적 행위와 선택, 과정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생각을 멈추지 않으며, 생각한 대로 행동한다. 어떤 이는 자신의 삶의 무게에 대해서, 어떤 이는 자신의 애정 상대의 행동을 보며 옳고 그름의 정의 판단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한다. 생각을 멈추지 않는 그들은 과연 존재하며 실존하는가?

사랑에는 자아 정체성의 회복과 발견의 특성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혹은 더 극적으로, ‘내가 이런 사람이었던가?’라는 질문에 대해 가장 진한 인상을 남기는 인간의 행위는 단연 사랑일 것이다. 어떠한 대상을 사랑하는 과정에서 우리 인간은 자기에 대한 새로운 경험과 발견을 하게 된다. 그것은 가히 충격적이고, 중독적이며 자극적이다. 기준은 모호하지만 평범한 사람과의 평범한 사랑은 우리에게 안정과 편안함, 따뜻함 등을 주곤 한다. 하지만 토마시사비나와 같이 가벼운 삶을 살아가며 애정과 성적 관계의 경계를 나누고 파트너를 찾아다니는 사람과의 사랑은 극적이고 반짝이지만, 아픔과 고통을 동반하기도 할 것이다. 아픔과 고통에 시달린 테레자프란츠는 책 속에서 무거움을 대표하면서도, 일상 속에서 각자의 연애 대상에 동조하고 동화되며 가벼움이 주는 심리적 혼란을 동반한 쾌락을 경험한다. 두 연인의 복잡하게 얽힌 사랑의 과정을 그린 이 책을 읽으며, 인물들은 사랑을 통해 살아있음을 경험하고자 하며, 이는 곧 실존주의적 삶에 대한 갈망임을 느꼈다.

그들은 각자의 사랑의 본위가 너무나도 달랐다. 나는 그들이 정체성을 확인하고 쿤데라가 만들어낸 책 속에 갇힌 성 중독자 혹은 의존증 캐릭터에서 벗어나, 지적 생명체로서 실존함을 느끼기 위한 수단으로 사랑을 선택했음을 느낀 적이 있다. 네 인물의 사랑에는 극명한 차이가 있고, 감히 누구 한 명도 옳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은 사랑을 통해 소설 속에서 살아갔고, 책 속의 누군가는 아파야만 했다. 그리고 동조와 동화, 회피 등의 방어 기제를 선택하며 중독적인 만남을 이어갈 수 밖에 없었다. 남녀가 거침없이 몸을 섞는 신체적인 격돌과 꿈속에서조차 그들을 괴롭히는 정신적 싸움은 그들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실존주의적 투쟁이 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곧 실존이라는 철학이 놓아둔 덫에 걸려들었다고 생각했다. 사랑을 통해 본인이 살아있음을 느끼고, 궁극적으로 실존에 대한 확인을 갈망하는 그들은 책에서 나오지 못한 채 망가진 연애를 했고 보통의 사람처럼 역시나 죽음으로 발길을 옮기더니 평범하게 죽었다. 나는 이 과정을 실존의 덫으로 보게 되었다.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리고 인물들의 죽음이나 시골에서의 말로에 대한 묘사를 보며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들의 엇나간 정사와 애정에 대한 중독과 무관하게 흘러가는 시간의 축에서, 그들은 죽음이라는 다분히 인간적인 운명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책의 6부 마지막에는 인물들의 마지막에 대해 비문 하나만이 남았다고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마지막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프란츠의 죽음을 시작으로 안도감과 그로 인한 배덕감을 동시에 느끼기도 했다. 나는 책 밖의 독자로서 쿤데라가 써놓고 번역된 글자들 이외의 것들을 멋대로 상상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내가 어떤 이유로 안도감을 느꼈던 것일지 생각해보니, 삶과 실존에 대해 고민하고 수단으로 사랑을 택한 뒤, 인간의 죽음으로 끝맺는 모든 과정이 그들에게 희미하게나마 인간답게 실존했다는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책 속 인물일 뿐인 그들에게 죽음만큼이나 인간적이고 실존적인 행위이자 결정이 없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 속 인물일 뿐이지만 타인의 죽음을 통해 실존을 느끼고 안도한 나 자신에게 배덕감을 느끼기도 했던 것이다.

 

정리하자면 책 속 네 명의 인물들은 책장을 넘어 각각의 인간으로서 실존주의적 삶을 살기 위해 사랑이라는 수단을 택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각자의 본위가 너무나도 다른 사랑으로 서로를 괴롭히며 실존이 주는 중독과 자극의 덫에 더욱 깊게 빠져들도록 만들었다. 실존이라는 가치가 소중하다는 사상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책에서 나올 수 없는 등장인물들에게 작가가 선사한 사랑과 호르몬이 주는 자극이나 실존주의가 동반하는 혼란은 그들이 중독되기에 충분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인간답게 소설 안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뜨겁게 고민하고 정사로 가득했던 젊은 시절을 지나 평범한 인간으로 인생의 말로를 살아간다는 결말로 책이 끝났다.

실존주의 철학이 주는 자극은 책 속 인물일 뿐인 그들에게 너무나 컸고, 사랑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낀 그들은 책장 속에서 죽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독자의 책 속에서 다시 태어나고 다시 사랑한다. 이들의 적나라하고 노골적이지만, 가장 동물적이면서도 솔직한 사랑을 읽고 싶은 독자, 그리고 사랑을 통해 내가 살아있음을 경험해본 적이 있는 모든 독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자 한다. 나는 책 속 인물인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의 인간다운 평범한 죽음으로 그들이 실존하였고, 실존주의적 삶을 선택했으며 그 실천을 위해 발악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 역시 사랑을 하고, 죽음에 대해 고민해오며 실존적 삶에 조금이나마 다가간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실존함은 죽음을 통해 증명되기도 할 것이다. 그들의 죽음이 본인의 사랑과 삶이 옳았음을 충분히 증명하였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친다.

 

<참고문헌>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재룡 역, 서울: 민음사, 2018